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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물/레포트 출석수업대체시험 기말시험 계절시험 핵심요약노트(교재전범위)
2020년 2학기 한국문화와유물유적 출석수업대체시험 과제물(조선시대 유적지)
자료구성 한국문화와유물유적 과제물 완성본(견본) + 참고자료 한글 파일 7개
해당학과 문화교양학과 자료출간일 2020년 10월 31일
학년/학기 4학년/2학기 페이지수 9
자료형태 ZIP (558.08 KB) 자료가격 10,200원
자료구성
문화4_한국문화와유물유적_과제물완성본(견본).hwp
경복궁.hwp
백산서원.hwp
익산향교.hwp
조선시대 서원의 발생.hwp
조선시대 향교의 발생.hwp
창경궁.hwp
향교와 서원에 대한 소감.hwp
합계 : 10,200
자료목차 및 주제
교재 속 조선시대와 관련된 부분을 읽고, 자신이 조선시대 유적지를 둘러본 경험을 정리할 것.


- 목 차 -

I. 서 론

II. 본 론
1. 향교의 소개
2. 영암향교 탐사

III. 결 론

참고문헌


<< 함께 제공되는 참고자료 한글파일 >>
1. 경복궁.hwp
2. 창경궁.hwp
3. 백산서원.hwp
4. 익산향교.hwp
5. 조선시대 서원의 발생.hwp
6. 조선시대 향교의 발생.hwp
7. 향교와 서원에 대한 소감.hwp

자료내용 미리보기
I. 서 론

향교는 조선왕조의 집권적 정치구조 위에서 전개된 것으로 군현제와 함께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교육기관이다. 성종 때 12목에 외관의 파견과 함께 경학박사·의학박사를 파견하였던 것은 지방교육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기는 아직 완벽한 지방교육제도가 정착된 것은 아니다. 향교교육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은 조선조에 이르러서이다. 조선에서는 군현제의 재정비와 강력한 운영과 함께 향교의 적극적인 유학교육의 면모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향교는 조선조의 관학기관으로서 더욱 인식되는 것이다.
관학 교육이 정비된 것은 세종 때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때부터 관학 교육 체계에 이상한 조짐을 보인다. 관학이 출세 도구로 변질되기 시작하였고, 향교의 교관은 질이 크게 저하되었으며 더구나 세조의 집정으로 양식 있는 선비들이 관학 교육에의 참여를 기피하게 되었다. 따라서 성균관, 향교 등 관학은 생도가 미달하였고 그나마 남아 있는 생도는 대개 학문에는 뜻이 없고 벼슬에나 관심이 있는 무능하고 부패한 무리들이었다.
관학의 부진은 16세기에 이르러 극한 상황에까지 이른다. 연산군은 성균관을 연회 장소로 사용하였고 학자들의 독서를 금하기조차 하였다. 이 때문에 관학은 극도로 퇴락해갔고 공부할 곳을 찾아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따라서 참교육의 장이 요청되었으며 덕망 있는 스승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원이 생겨났으므로 그 뒤 서원은 쉽게 교육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 레포트는 교재 속 조선시대와 관련된 부분을 읽고, 자신이 조선시대 유적지 중에서 전남 영암향교를 둘러본 경험을 정리하였다.


II. 본 론

1. 향교의 소개

향교는 조선시대의 지방에 설치한 관립학교이다. 향교는 본래 관학교육기관으로 교육기능이 선현봉사의 제향기능보다 앞섰다. 따라서 구성원도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관이나 교생이 중심이었다.『경국대전』에는 교수관을 교수(종6품)와 훈도(종9품)로 구분하고 있다. 조선조의 군현은 약 330여 개 소에 달하였으나 수령을 파견하기에도 어려운 실정이었던 조선 초기에는 교수관의 충원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정식 관인이 아니면서 교수직을 감당하는 자들은 교도직, 또는 학장등의 이름으로 재지 신분의 생원·진사 중에서 선발하여 충원하기도 하였다.



- 중략 -